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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두루푸' 가을밤 전설과 만난다 (경향신문 10.19)10/10/19
* 31일 첫 내한공연 피아니스트
* 연간 80회 연주 불구 ‘은둔형 생활’… 음악 전체 관조하며 ‘달관의 연주’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는 번번이 기자들을 좌절시킨다. 그는 1966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3년 뒤 열렸던 리즈 콩쿠르를 모두 석권하면서 음악계의 빅스타로 등극했지만, 지난 30년간 단 한번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기인’ 혹은 ‘은둔자’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어떤 언론은 이를 비꼰다. 이를테면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야성적이고 털 많은, 거지 밥통을 집에 놓아둔 채 억지로 콘서트홀에 끌려나온 사람 같은 외모”라고 비꼬면서 “털이 북실북실한 은둔자”라고 딱지를 붙였다. 또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비평가 미셸 슈나이더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곰”이라고 루푸를 지칭하면서 “오늘날 가장 자폐적인 피아니스트”로 꼽기도 했다.

전 세계를 돌며 1년에 약 80회의 연주회를 소화하면서도 여전히 ‘자폐’의 냄새를 풍기는 ‘묘한’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이 털북숭이 은둔자가 마침내 한국을 찾아온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인터뷰를 거부했다. 아예 내한 공연 계약서에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명시했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역시 루푸다. 다음달 3일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서울시향과의 협연은 두 달 전에 이미 입장권이 동났다. 이보다 앞서 이달 31일 펼쳐질 독주 리사이틀도 매진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음악 애호가뿐 아니라 동업자인 피아니스트들조차 왜 그에게 열광하는가?

라두 루푸는 누구인가?

루푸는 1945년 루마니아 갈라티(Galati)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학살의 폭풍이 지나간 땅이었다. 히틀러보다 한걸음 먼저 집시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했던 루마니아 파시스트들은 2차대전의 종전을 맞으면서 기세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장차 음악가로 이름을 날릴 유대인 아기에게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같은 나라에서 먼저 태어났던 유대인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이 감당키 어려운 운명의 가시밭길을 헤쳤던 것과 달리, 루푸는 비교적 안정감 있게 음악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는 12세의 데뷔 리사이틀에서 자작곡을 연주한 이래, 전설적인 교육자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를테면 디누 리파티의 스승이었던 플로리카 무지체스쿠, 103세까지 리사이틀을 펼쳤던 불굴의 피아니스트 첼라 델라브란체아 등을 사사했다. 1961년에는 모스크바로 유학해 에밀 길렐스와 리히테르를 키워냈던 겐리히 네이가우스의 문하에 들어섰다.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세계 정상의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군림해왔지만, 1996년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듀엣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음반 녹음을 일절 선보이지 않는 것도 그의 ‘은둔성’을 부각시킨다.

연주에 앞서 건반의 무게를 일일이 지정할 만큼 까탈스러운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이는 호로비츠 같은 앞 세대의 거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루푸는 한층 더 연주회 스태프들을 긴장시킨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자도 통상적인 피아노 벤치가 아니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는 꽤 꼿꼿한 자세로 연주하는데, 이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명가(名家)로 손꼽히는 네이가우스 가문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루푸와 함께 연주한 음악가들은 그를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그가 머레이 페라이어, 시몬 골드베르크, 바바라 핸드릭스 등의 음반에서 사려깊은 반주자로 동행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루푸가 지휘자들에게 버거운 피아니스트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불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미묘하고 뜨거운 시선은 때때로 지휘자를 긴장시킨다.

내가 보는 라두 루푸

그렇다면 국내의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은 라두 루푸를 과연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의 피아니스트 강충모(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와 첼리스트 양성원(연세대 음대 교수)도 루푸의 연주회를 기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전해온 촌평을 가감없이 게재한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두 명만 거론한다면 라두 루푸와 머레이 페라이어를 꼽아야겠다. 그런데 내게는 루푸가 더 커다란 산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와 브람스를 들어보면, 영적인 느낌으로 충만하다. 그의 음악은 아주 거대하다. 소리가 크다는 얘기가 아니라 음악에 담긴 내면의 세계가 크다는 뜻이다. 그는 첫 음을 연주할 때 이미 음악의 종지부를 내다본다. 음악의 전체를 관조하면서 하나씩 풀어가는, 한마디로 달관의 연주와도 같다.”(강충모)

“파리음악원에 유학 중이던 80년대 중반, 음악을 포기할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루푸의 독주회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파리의 살 플레옐 연주회장의 가장 꼭대기층, 가장 뒷자리에서 그의 연주를 지켜봤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만드는 명연이었다. 루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가다. 그때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음악을 향해 다시 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내한 연주회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이젠 나도 음악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됐고, 게다가 당시에는 혼자 연주를 지켜봤지만 이번에는 아내와 동행한다.”(양성원)

이미 매진된 11월3일 연주회에서는 베토벤의 협주곡 4번을 정명훈의 지휘로 선보인다. 이날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말러 2010 시리즈>의 일환으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도 함께 연주한다. 하지만 골수 애호가들은 이달 31일 독주회를 더 기대할 수도 있겠다. 야나체크의 ‘안개 속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23번 ‘열정’,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인 ‘B플랫장조 D960’이 기다리고 있다. 루푸의 첫번째 내한을 놓치기 아까운 사람들은 입장권 구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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