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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 소프라노 투혼에 청중도 울었다 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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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도 진실한 노래 선물한 제시 노먼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제시 노먼의 노래는 그녀가 입은 선홍색 드레스보다 더 붉고 아름다웠다. <사진 제공=마스트미디어>  

등이 굽은 소프라노 제시 노먼(64)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로 절둑거리며 나온 그녀는 무척 안쓰러웠다. 7년 전 내한공연 때만 해도 키 180㎝에 몸무게 130㎏이었으나 지금은 상당히 수척해졌다.

그러나 `소프라노의 전설`은 공연이 시작되자 갑자기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가라, 그러나 어디로?`를 불렀다. 하늘로 날아갈듯 가볍고 투명한 노랫소리였다. 선홍색 드레스를 입은 노먼의 목소리가 하도 선명하고 청아해 `천상의 악기는 바로 사람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몸속 깊은 곳에 `천상의 소리샘`이 있는 것처럼 성스러운 공명이 울려퍼져 나왔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때는 노래 가사 하나하나에 실린 감정을 다 살렸다.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이니아스` 중 `벨린다, 그대 손을 주오`에서는 버림받은 여인의 처연함이 절절했다. 비탄에 빠진 노먼이 가사를 읊자 노래가 저절로 울었다.

보통 독창회 무대에서 성악가는 노래 두세 곡을 부른 뒤 오케스트라 연주 때는 잠시 퇴장했다가 다시 나온다. 하지만 지난달 에어로빅을 하다 발목을 다친 노먼은 그대로 무대 위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이때 흘러나온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개선행진곡은 그의 노래 인생 40년에 경의를 표하는 팡파르처럼 들렸다.

그녀는 오직 실력과 열정, 노력만으로 거구의 흑인 소프라노를 환영하지 않은 오페라 무대를 굴복시켰다. 1969년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엘리자베트 역으로 데뷔한 후 흔들림 없이 정상을 지켜왔다.

때로는 까다롭다는 욕도 많이 먹었다. 함께 공연하는 연주자들은 향수를 뿌릴 수 없었고, 공연장과 호텔 객실에는 꽃과 식물류, 에어컨을 금지시켰다. 독선으로 비칠 수 있지만 성악가의 생명인 성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개선행진곡이 끝나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으나 노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섭게 집중하다가 곧바로 오페라 `아이다` 중 `이기고 돌아오소서`를 불렀다. 연인이자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승리를 기원하면서도 그와 싸워야 하는 아버지와 조국을 걱정하는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의 기구한 운명을 담은 노래다. 노먼은 분노로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객석을 노려보며 아이다의 갈등과 슬픔을 살렸다.

그녀는 곡이 바뀔 때마다 자기최면을 걸어 내면의 감정을 끌어올리려 애를 썼다. 물론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고음을 아꼈고 가성으로 대체하는 대목이 많았다. 소리 자랑을 할 수 없으니 노래에 혼을 담으려 노력했다.

뮤지컬 아리아와 흑인 영가를 부른 2부에서는 마이크(확성기)를 잡았다. 마지막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서는 힘이 빠져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가 `구조요청`을 하듯 마이크를 객석에 돌리자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그녀의 부족한 성량을 보탰다. 관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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